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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 가경자 선포
작성일 : 2016-05-29     조회 : 1595

한국인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 가경자 선포

- 2009년 교황청에 시복 문서 제출한 지 7년 만... 기적 심사 통과하면 시복 -


한국 천주교회가 시복을 추진 중인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의 시복 안건이 2016년 3월 14일 추기경과 주교들의 회의를 통해 교황청 시성성의 성덕 심사를 통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6년 4월 26일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을 접견하시고, 최양업 신부의 영웅적 성덕(heroic virtue)을 인정하는 시성성 교령을 승인하셨다. 이 소식은 바티칸 통신(VIS) 4월 27일자에 공표되었다.

이로써 최양업 신부는 ‘가경자’(可敬者, Venerable)로 선포됐다. ‘가경자’란 교황청 시성성 시복 심사에서 영웅적 성덕이 인정된 ‘하느님의 종’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가경자로 선포된 증거자는 그의 전구(轉求, intercession: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간청하고 탄원하는 행위)를 통해 기적이 일어났음을 입증하는 ‘기적 심사’를 통과하면 시복이 결정된다.



▲(왼쪽)최양업 신부의 미사 집전 장면을 재현한 모형.
(오른쪽)최양업 신부 동상. 걸어서 사목방문에 나서는 모습이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삶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의 두 번째 사제이자 첫 번째 신학생이다. 1821년 3월 충남 청양 다락골 인근에 있는 새터 교우촌에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1984년 시성)와 복자 이성례 마리아(2014년 시복)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35년말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 최초의 신학생으로 선발됐다. 1836년 12월 3일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신학생은 마카오 유학길에 올랐고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최방제 프란치스코는 유학 도중 1837년 11월에 열병으로 사망한다. 1842년 파리 외방전교회의 명으로 마카오를 떠난 최양업과 김대건은 만주의 소팔가자로 이동, 학업을 계속했다.

1844년 동료 성 김대건 안드레아(1984년 시성)와 함께 부제품을 받은 그는 먼저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귀국한 뒤에도 소팔가자에 남아 귀국로를 물색하던 중, 한국의 밀사들에게서 1846년의 병오박해와 김 신부의 순교 소식을 듣는다.

몇 차례 귀국을 시도하였으나 실패 후 1847년 상해로 이동, 1849년 4월 15일 사제품을 받은 뒤 밀사들의 도움을 받아 같은 해 12월 3일 귀국하였다. 귀국 직후부터 최양업 신부는 전국의 신자 공동체를 방문해 미사를 집전하고 고해성사를 주었다. 1850년 초부터 11년 6개월간 쉼 없이 사목방문을 하는 중에도 그는 한문 교리서와 기도서를 한글로 번역했고, 순교자들의 기록을 수집했으며, 선교사의 입국을 돕는 한편 조선 신학생들을 유학 보냈다. 1861년, 경남 지방 사목방문을 마친 최 신부는 주교에게 결과를 보고하러 서울로 가던 중 과로에 장티푸스가 겹쳐 6월 15일 선종했다. 당시 나이 40세였다.

한국 교회는 순교로 신앙을 증언한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를 ‘피의 순교자’, 당대의 유일한 한국인 사제로서 신자들을 위해 조선 팔도를 누빈 최양업 신부를 ‘땀의 순교자’라 부른다.



▲청주교구 배티 성지에 있는 최양업 신부의 사제관 터.
 

시복 추진, 시작은 한국의 초기 순교자들과 함께

최양업 신부의 시복 추진이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이다. 1996-1997년 청주교구 배티 성지에서 최양업 신부의 전기 자료집을 간행하며 시복 청원을 준비했으며, 1997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한국 천주교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 작업을 통합 추진하기로 결의하면서 최양업 신부의 시복 안건도 함께 논의되기 시작했다. 2001년 주교회의는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주교회의가 최양업 신부 시복 시성 안건의 청구인이 되어 절차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최양업 신부의 시복 법정은 2005년 12월 3일의 첫 회기를 시작으로 4년간 13회 열렸으며, 종료 회기는 2009년 5월 20일에 있었다. 같은 해 6월 3일, 주교회의는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시성 법정 문서’를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했다.

2009년 시복 문서를 접수한 교황청은 문서들을 면밀히 검토해 정리한 뒤, 시복 안건의 최종 결정을 위해 보고관이 작성하는 최종 심사자료인 ‘포지시오’(심문 요항)를 2014년 8월 23일 시성성에 제출했다. 교황청 시성성 역사위원회 심의는 2014년 11월 18일, 시성성 신학위원회 심의는 2015년 12월 15일, 성덕 심사의 최종 단계인 추기경과 주교들의 회의는 2016년 3월 14일에 열렸다.



▲배티 성지에 건립된 최양업 신부 박물관.

기적 심사 법정 2015년에 개정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 추진 건이 같은 시기에 시복 추진을 시작한 순교자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기적 심사’ 때문이다. 시복 시성에 관한 교황령(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완덕의 천상 스승’ 제2조 5항, 1983.1.25.)과 교황청 시성성 지침(‘주교들이 행할 예비 심사에서 지킬 규칙’ 제32-34조, 1983.2.7.)에 따르면, 증거자의 시복 조사에는 기적 심사를 하게 되어 있다. 순교자는 순교 자체를 기적으로 보아 기적 심사가 면제된다.

최양업 신부의 기적 심사 법정은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주관으로 2015년 9월 8일에 개정됐다. 앞서 2007년 4월 15일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는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적 심사에 즈음하여”라는 담화문을 발표, 최양업 신부의 전구로 초자연적 은혜, 곧 기적을 받은 사례를 제보해 줄 것을 신자들에게 요청했다. 기적 심사 법정은 제보된 사례들 중 교황청에 보고할 기적을 신중하게 판별, 검증하는 단계다. 제보된 사례를 검증하는 기적 심사에는 당사자와 증인들의 면담, 해당 사례가 초자연적 현상임을 식별하는 전문가의 진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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