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타 언덕(십자가의 길에서 부활성당까지) | |
작성일 : 2015-12-22 조회 : 4549 | |
‘본시오 빌라도’ 법정부터 ‘골고타’ 언덕까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으신 곳은 ‘슬픔의 길’, 곧 ‘비아 돌로로사’라고 부른다. 지금은, 누가 이곳에서 수난을 겪은 일이 있었냐는 듯 시끌벅적한 재래시장이 되어있다. 예루살렘 도성 안에서 ‘십자가의 길’을 순례하려면, 호객행위 하는 상인들, 빵빵거리는 자동차, 물건 사러 다니는 인파를 피할 수 없다. 군중 속에 파묻혀 기도문을 읊조리노라면, 내 일거수일투족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주변인들 눈길이 꽂혀온다. 흡사 이천 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이. 그때도 파스카 축제를 위해 엄청난 인파가 예루살렘을 채웠고, 형틀을 짊어진 죄인의 행진은 눈길을 끄는 구경거리였다. 골고타 언덕까지 구백 미터 거리를 올라가는 동안, 동물원 원숭이를 구경하듯, 또는 메시아가 저럴 수는 없다며 혀를 차기도 했을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골고타’는 아람어로 ‘굴골타’, 곧 ‘해골터’를 뜻한다(예수님 시대에 통용되던 언어는 아람어였다). 당시 골고타는 예루살렘 성 바깥이었다. 도성 안에서는 형을 집행할 수 없기에, 죄인들은 성 밖으로 끌려 나갔다(레위 24,14 1열왕 21,13 등 참조). 십자가 형은 로마인들이 집행한 형벌 가운데 가장 야만스럽고 잔인한 종류로, 형틀에 매달린 죄인은 2~3일에 걸쳐 서서히 죽는다. 형틀 위에 늘어진 몸이 호흡기를 압박하면서 질식사한다. 사람의 한계를 시험하는 이 지독한 고통 때문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그 인간적인 번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이 당일 운명하시자, 빌라도가 놀란다(마르 15,44). 로마인들은 사망한 죄인을 바닥에 방치하여 새나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했으나, 특별히 매장 허가를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청하여 주님의 시신을 거두었는데(마르 15,43 루카 23,50-51),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었다고 한다. 빌라도의 허가까지 얻어낸 것으로 보아, 최고 의회인 ‘산헤드린’의 의원이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반역죄로 처형된 이의 시신을 청하는 행위는 공범자 또는 추종자라는 의혹을 일으킬 수 있으나, 산헤드린 의원이라는 위상이 요셉의 신변을 보호해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모세오경 율법에 따르면, 나무에 매달리는 형벌로 죽은 이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신명 21,22-23). 그날 바로 묻어야 한다. 그래서 요셉은 바위를 깎아 만든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모신 후, 돌을 굴려 입구를 막았다. 구약 시대부터 이스라엘이 지켜온 매장 방식은 매우 독특했다. 가난한 이들은 그냥 땅에 묻지만, 부유층은 대부분 가족무덤으로 만들었다. 큰 동굴에 방을 여럿 만들고, 방마다 돌침대들을 두었다. 돌침대 위에 망자를 누인 후, 살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냄새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또는 유물이 도굴되지 않도록, 입구는 돌을 굴려 막았다. 일 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 뼈만 남으면, 돌침대 아래쪽 구덩이에 망자들의 뼈를 차곡차곡 모았다. 그래서 가족들의 뼈가 한 구덩이 안에 모두 모이게 되므로, 성경에는 ‘조상과 함께 잠든다’는 표현도 생겨났다(1열왕 2,10 등). 그러나 신약 시대에 접어들면서 지중해 지방 전역에 부활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게 된다. 그래서 뼈를 한데 모으지 않고, 각자의 부활을 기원하며 따로 보관하는 상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시신에는 향료나 몰약을 발랐는데, 주검에서 나는 악취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여인들이 새벽에 예수님 무덤으로 가면서 항료를 준비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마르 16,2). 그곳에서 여인들은 빈 무덤만 발견하고 당황했지만, 이것은 주님의 부활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무덤은, 서기 2세기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아프로디테 신전을 세운 후, 외형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은 점차 넓어져 골고타가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4세기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무덤 터를 다시 찾아 성전을 봉헌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이 죽음 이긴 부활을 지향하는 것처럼, 골고타 언덕도 이제는 해골터로 외면받는 바깥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사실 예수님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겠다는 고백과 같다. 그러므로 공동선을 위해 희생을 감내할 줄 알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용기 또한, 주님 부활과 하느님 나라의 존재에 대한 또 다른 증거가 되어 줄 것이다.
출처 : 가톨릭신문 “이스라엘 이야기” 김명숙(소피아)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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