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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의 성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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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강(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곳)
작성일 : 2015-12-22     조회 : 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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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가 요르단 강을 만나면, 우리는 한강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큰 강을 상상한다. 우리나라가 워낙 물 좋고 산 좋은 금수강산이니, 다른 나라 강들도 으레 그렇겠거니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시편 42,2) 물 귀한 나라에 오면, 기준은 달라진다. 이스라엘처럼 광야가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에서는 뭔가 흐르는 것만 보여도 시내고, 고맙게도 사시사철 물이 흐르면(!) 그것은 강이다. 그래서 실제로 요르단 강을 보면, 조금 황당해서 웃음이 날 정도다. 최대 강폭은 6~7미터, 최소는 1~2미터 가량인데, 이스라엘에는 이보다 더 큰 강도 없다. 오죽했으면, 모세 할아버지가 느보 산에서 가나안을 살피시다가, 요르단 강의 사이즈를 보고 어이가 없어 돌아가셨다는 농담도 생겨났다.

 

요르단은 히브리어로 ‘야르덴’이라 하고, ‘야라드’와 ‘단’이 합성된 낱말로 추정한다. 수원은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인 헤르몬산이다. 헤로몬은 최고봉이 2800미터 정도로서 5월까지 눈이 쌓인다. 고도가 높아 다른 지역에 비해 강수량이 풍부하므로, 시편에는 ‘헤르몬의 이슬’을 찬양하는 구절도 나온다(133,3: “시온의 산들 위에 흘러내리는 헤르몬의 이슬 같아라. 주님께서 그곳에 복을 내리시니 영원한 생명이어라”). 헤르몬에는 생명수를 제공해주는 샘이 세 군데 흘러나오는데, 가장 큰 곳이 ‘단 샘’이다. 단이라는 이름은 고대 ‘단’ 지파가 그곳에 정착했기 때문에 붙여졌다. ‘단’ 지파는 원래 지중해 남쪽으로 영토를 분배 받았으나, 삼손 이후 필리스티아의 압력에 밀려 가나안 최북단으로 이동하게 되었다(판관 18장).

 

그리고 ‘야라드’는 히브리어로 ‘내려오다’라는 뜻이므로, ‘야르덴’은 ‘단이 내려온다’로 그 의미를 추정해볼 수 있겠다. 곧, 요르단은 헤르몬의 이슬이 모인 축복의 강이다. 이 물이 단 샘에서 갈릴래아 호수로 들어갔다가, 마지막에는 사해(死海)까지 이어진다. 구약에서 요르단 강은, 아람 장군 나아만이 엘리사의 조언대로 일곱 번 몸을 씻어 문둥병에서 해방된 곳이다(2열왕 5장). 이곳에는 탈출기의 사건도 얽혀 있다. 모세가 죽은 후, 히브리인들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들어갈 때 요르단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여호 3장). 곧, 요르단 강은 광야에서의 방랑을 마감하고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는 입문이다. 그래서 요한이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주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선 나아만이 문둥병을 씻고 새 살을 얻은 것처럼, 세례 받는 이도 묵은 죄를 씻으며 새로운 나로 거듭난다는 의미를 얻는다.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는 탈출기 때와 같은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일깨우는 역할도 했다. 곧, 나의 방랑과 배회를 마감하고, 생명의 나라, 곧 하느님 나라에 동참하라는 외침이자 몸짓이다. 바오로 사도는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다고 했다(로마 8,15-17). 그래서 옛사람들뿐 아니라, 우리도 세례를 통해 묵은 것을 벗는다. 그리고 주님을 닮는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서약하며, 새 이름을 받는다. 이 이름은, 내 육신의 ‘흙’이 사라지는 날, 하느님이 넣어주신 “숨”(창세 2,7)이 하느님 나라로 다시 돌아갈 때 불리게 될 이름이다.

 

예루살렘과 온 유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마르 1,5), 요한은 예수님이 그들 사이에 섞여 계시는 것을 보고 놀랐을 것 같다(마태 3,14). 그러나 주님의 세례는 죄 사함이 아니라 당신의 활동을 일반에게 공식적으로 알리는 곧 첫 테이프를 끊는 일종의 상징행위였다. 우리는 약식으로 세례를 받지만, 고대에는 몸 전체를 침수시켰다. 물은 생명인 동시에 죽음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사람을 두고, 심연의 물이 목까지 차오른다는 표현도 사용했다(요나 2,6: “물이 저의 목까지 차오르고 심연이 저를 에워쌌으며”). 그러므로 예수님이 물속에 잠기심은 죽음에 빠지신 것이나, 다시 올라오심으로써 그 죽음을 이기실 것임을 전조로 보여준 것이다.

 

 

출처 : 가톨릭신문 “이스라엘 이야기” 김명숙(소피아)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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