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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의 성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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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호수
작성일 : 2015-12-22     조회 : 2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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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생애 중심지 갈릴래아 바다는 우리 마음 한 켠에 심긴 고향 같은 성지다. 그런데 성경에는 갈릴래아 바다가 호수로도 나오니, 민물인지 짠물인지 좀 헷갈릴 수 있다. 필자도 물을 살짝 먹어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밍밍한 맛도.

 

역설적이지만, 갈릴래아 ‘바다’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민물’ 호수다. 게다가 해저 이백 미터 아래에 있어, 호수로는 세상에서 고도가 가장 낮다. 갈릴래아 지방에서 동쪽 끝으로 가다 보면, 화산 분화구처럼 움푹 패인 호수가 나온다. 이곳은 고대 이스라엘의 동쪽 국경이었으며(민수 34,11), 근대까지도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의 경계였다(3차 중동 전쟁 뒤에는 골란 고원이 국경으로 바뀐다). 수원은 이스라엘 최북단에 있는 헤르몬 산이다. 단 샘, 하쯔바니 샘, 바니야스 샘이 요르단 강을 타고 갈릴래아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은 다시 한 번 요르단 강을 타고 사해까지 흐른다.

 

갈릴래아 바다는 킨네렛 바다(여호 12,3), 겐네사렛 호수(루카 5,1), 티베리아스 호수(요한 6,1)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타리케이아이’ 호수라는 그리스어 이름도 있었다. ‘생선 염장하는’ 마을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고향인 ‘마그달라 누니야’를 가리키는 듯한데, 마그달라 누니야는 아람어로 물고기 탑을 뜻한다. ‘킨네렛’은 히브리어 ‘키네렛’을 한글로 옮긴 말이다. 바다 모양이 ‘키노르’, 곧 수금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겐네사렛’은 키네렛을 그리스어로 음역한 말로 추정된다.

 

티베리아스는 예수님 시대에 호수 주변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도시였다. 그래서 갈릴래아 바다는 티베리아스 호수로도 통했다. 헤로데 임금의 둘째 아들 ‘안티파스’가(세례자 요한의 목을 친 영주) 세운 도시로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루카 3,1) 이름을 땄다. 본디 무덤이 있던 곳을 깎고 만든 도시라, 초창기에는 유다인들이 살지 않았다. 서기 2세기에 라삐 시몬 바르-요하이가 티베리아스를 정화한 이후에야, 종교·학문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된다. 성전이 무너진 뒤에는, 최고법정회의인 ‘산헤드린’이 마지막으로 티베리아스에 머물렀다. 서기 5세기에는 예루살렘 탈무드가 또한 집성되었으므로, 현재는 예루살렘과 함께 유다교의 중심지다.

 

갈릴래아 호수가 민물임에도 바다라 불린 까닭은, 일단 바다만큼 커 보인 덕분이다. 둘레 길이는 오십 킬로미터 이상이고, 최고 수심은 사십 미터를 넘나든다. 바람 불면 파도도 인다. 요르단 강처럼 ‘겸손한’ 강만 보다가 호수가 너무 크니, 바다처럼 느껴질 만도 했다. 게다가 바다는 고대인들에게 특별한 상징성이 있었다. 창조주에 맞서는 혼돈의 세력, 곧 악의 세력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바쿡서에는(3,8) 하느님이 바다에 진노하신다는 표현이 나온다. 시편은(93,3-4), 물들이 제 목소리를 높이지만 주님께서 더 엄위하시다고 찬양한다. 물들이 목소리를 높임은 창조주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다는 어감이다. 주님이 그보다 더 엄위하시다는 찬양은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혼돈의 세력, 물을 꺾으심을 뜻한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꾸짖으시자’ 호수가 잠잠해졌다(마르 4,39). 물 위를 걸으신 사건 (마태 14,22-33) 또한 악의 세력을 밟아 제압하신다는 의미를 갖는다. 욥이 하느님을 ‘바다의 등을 밟는 분’으로 찬양했듯이(욥 9,8), 예수님은 갈릴래아 바다의 등을 밟아 당신의 신성과 권능을 증명하셨다. 그래서 이 사건을 지켜본 제자들이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태 14,33)라고 고백했던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입에서 나온 지혜가 ‘심연’, 곧 ‘깊은 물의 바닥을 거닐었다’는 집회서의 찬미가도(24,5) 이 사건에 투영되어, 예수님의 신성을 부각시킨다. 게다가 물 위를 걸으심은,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딛고 건넌 홍해의 기적을(탈출 14,15-31) 재현하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표징이(요한 6,1-13),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을 배 불리신 탈출 16장을 되풀이하듯이. 이처럼 주님의 신성을 드러낸 갈릴래아 바다는 이후에도 그리스도교를 품는 요람이 되어 주었다.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의 집을 ‘집 교회’(domus ecclesiae)로 꾸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출처 : 가톨릭신문 “이스라엘 이야기” 김명숙(소피아)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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