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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의 성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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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번 게시글
베드로 수위권성당
작성일 : 2015-12-18     조회 : 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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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 호수 북서쪽에는 ‘베드로 수위권’이라 불리는 성당이 있다. 이곳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시고(요한 21,14),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확인하신 것을 기념한다. 수위권은 우두머리 ‘수’(首), 자리 ‘위’(位)로서, 교회의 수장이 되는 권리를 뜻한다.

 

베드로가 수위권을 처음 받은 곳은 헤르몬 산 근처의 ‘카이사리아 필리피’라는 지방이었다(마태 16,13-20). 그곳에서 예수님은 시몬 바르요나의 이름을 베드로, 곧 ‘반석’으로 바꾸시고, 이 반석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으로 수위권을 부여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체포되었을 때, 대사제의 집 안뜰에서 사람들과 불을 쬐던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다(루카 22,54-62). 다른 제자들도, 메시아라고 믿은 스승이 비참하게 죽어 버리자 모두 실망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 낚는 어부들이 물고기 낚는 어부로 돌아와, 생업에 열중해 있었다(요한 21,3). 그런데 밤새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허탕을 친 그 아침에 예수님이 서 계셨다. 그리고 ‘배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져 보라’ 하시니(6절),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다고 한다(11절).

 

그제야 눈이 뜨인 제자들이 뭍으로 나오니 숯불이 피워져 있었는데, 이 숯불은 베드로에게 자신의 배반을(루카 22,56) 뼈아프게 떠올려 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방금 잡은 물고기를 이 불에 구워, 제자들을 아침 식사에 초대하셨다. 베드로 수위권 성당 안에 보존된 ‘멘사 크리스티’(주님의 식탁)가 바로 그 장소로 전승돼 내려온다.

 

조반 후 예수님은 베드로를 따로 부르시고, 당신을 사랑하는지 ‘세 번’ 물어보신다. 죄책감이 되살아난 베드로가 그 질문에,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게다가 예수님이 물어보신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이었다.

 

신약 원전에는 사랑이라는 말에 두 가지 동사가 나타난다. 하나는 ‘아가파오’로서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필레오’로서 친구 간에 주고받는 우정 같은 사랑이다. 베드로가 대답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지는 알 수 없으나, 마침내 그는 필레오로 대답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의 양들을 돌보라”고 당부하셨다. 그런데 두 번째에도 주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을 아가파오 하는지 물어보신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을 배반한 적이 있는 베드로는 아가파오로 답하기에 스스로도 너무 부끄러웠을 것이다. 결국 그는 필레오로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당신의 양 떼를 부탁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눈 높이를 낮추시고, 베드로가 당신을 사랑하는지 필레오로 물어보신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세 번이나 물어보시므로 몹시 슬퍼하며, ‘제가 필레오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곧 ‘제 사랑이 아직 필레오임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 양들을 돌보라는 당부를 되풀이하시어, 베드로 위에 세워질 교회의 수위권을 재확인하셨다. 갈릴래아 호숫가, 베드로 수위권 성당 내 세워진 기념 동상이 그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어보신 이 세 번의 질문은 ‘몸과 마음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명한 신명기 6장5절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사랑’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측정이 어려운 개념이므로,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구약 시대 사람들이 이해한 사랑은 주군에 대한 충성을 뜻했다. ‘하느님의 벗’이라 불린 아브라함도(이사 41,8 2역대 20,7) 직역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하느님께 충절을 지킨 이’라는 의미다.

같은 배경으로 보면, 예수님의 질문이 더 쉽게 이해된다. 곧, 당신을 향한 베드로의 마음이 애틋한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하여 신의를 지킬 수 있는지’ 확인하는 매우 실제적인 질문이었다.

 

비록 이곳에서는 베드로의 사랑이 ‘필레오’에 그쳤지만, 훗날 로마의 전차 경기장에서 아가페로 완전하게 승화한다. 차마 예수님과 똑같이 죽을 수 없었던 그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기까지 자신을 온전히 바쳤기 때문이다.

곧, 예수님은 처음부터 완벽한 제자를 수장으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이를 조금씩 다듬어 가셨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베드로의 변모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지금은 내 신앙이 ‘필레오’에 그칠지라도, 세월의 승화 과정을 거치며 언젠가는 ‘아가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가톨릭신문 “이스라엘 이야기” 김명숙(소피아)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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