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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순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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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산(겟세마니 대성당)
작성일 : 2015-12-22     조회 :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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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어 겟세마니는 '기름을 짜는 기계'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수난 전 이 곳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다. 그래서 겟세마니 성당이 '고난의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께서 베드로와 제베데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겟세마니에 오셨다. 성경학자들은 겟세마니는 베다니아와 벳파게로 가는 길목에 있어 예수께서 자주 들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때는 과월절을 앞둔 니산달(4월) 초 목요일 저녁,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후 세 제자와 함께 겟세마니에 갔다. 수난과 죽음이 닥쳐온 것을 안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는 말씀으로 세 번이나 같은 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고 있는 제자들을 세 번 흔들어 깨우셨다.

 

 아울러 예수께서 체포되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예수께선 유다인 최고의회와 빌라도, 헤로데 앞에서 세 번 재판을 받으셨다. 그리고 사형선고 후 골고타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고, 예수께서 죽으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성경학자들은 복음서에 나타난 이 3의 구도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겟세마니에 성당이 세워진 것은 4세기 후반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재위 379~395년) 때다. 비잔틴 양식의 우아한 이 성전은 614년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다. 이 성전 자리에 1170년경 십자군에 의해 다시 성전이 세워졌으나 14세기 이후 폐허로 변했다.

 

 지금의 성당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여러 나라에서 건축비를 지원받아 프란치스코회가 1919년에 착공, 1924년에 완공했다. 그래서 '여러 민족의 성당' 또는 '만백성 성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실리카 양식의 이 성당 중앙 제대 앞에는 예수께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던 곳(마태 26,39; 마르 14,35; 루카 22,41)으로 전해지는 넓다란 바위가 놓여있다.

 

 가시 면류관 장식에 둘러싸인 바위!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예수님의 간절하고 비통한 절규에 순례자 가슴에 흐르는 참회의 고백은 단 한 마디뿐.

 

 "주님! 제가 회개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바위 외에도 4세기 비잔틴 성당 모자이크 잔해가 남아있다. 또 성당 뜰에는 예수 시대 때부터 있던 올리브 고목 여덟 그루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증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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